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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래: 꿈틀거리는 생명질 Wriggling Lives

LEE Gil-Rae: Wriggling Lives

등록일 2020년09월20일 08시23분 URL복사 기사스크랩 프린트하기 이메일문의 쪽지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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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래: 꿈틀거리는 생명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증식과 생성 형식의 지난했던 작업으로부터 용접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투박하고 질박하기 그지없는 원시적, 고고학적 형식에로의 이행이라는 매력적 변화가 감지된다.”

 

LEE GIL RAE – TIMELESS PINE TREE : 千年(천년)

On view September 17 – October 16, 2020

 


작업실에서 이길래 작가

 

이길래. 흔히 소나무 작가라 불린다. 그의 작업 대부분도 소나무처럼 보인다. 나무를 주된 모티프로 하고 있고 그것이 소나무 표피를 연상시킨다는 누군가의 상찬에 의해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 경기도 남동부 외곽에 자리한 작업실에도 실제 소나무가 제법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의 소나무도 만만치 않은 크기와 자세로 버티고 있다. 크게 보아 작업동과 전시동, 대형작품이 상설되어 있는 옥외 전시공간 등으로 구성된 그의 작업실은 상당량의 페인팅과 드로잉, 소조와 조각작품들로 가득하다. 미술교육학과 재학시절 장르구분 없이 훈련하고 받아들이며 풀어낸 이런저런 아카데믹한 결과물들로부터 쇠로 만든 나무 신작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이길래는 세월을 지켜낸 이런저런 자연물의 현재적 표정을 주목한다. 그래서일까. 이길래의 그것들은 사람 형상으로 보인다. 어쩌면 사람이다. 기실 이들 모두는 흙에서 비롯했다. 흙에 살고 흙으로 돌아간다. 이길래 작업은 흙에서 시작된, 흙을 살아내는 꿈틀거리는 그 무엇이자 기운이다. 대개의 작업은 흙속에서 건져 올렸거나 흙속에서 땅위로, 땅에서 하늘로 향하고 있다. 사비나미술관 재개관전(2018)에서는 벽을 뚫고 나오는 작업을 선보였다. 건축가와 건축주와의 협업이라는 과정도 매력적이었지만, 오랜 시간 자연이라는 숙주(宿主) 역할을 작업에 부여해온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공생과 상생을 향한 또다른 노력이었다.

 

이길래는 어릴적 자란 곳과 비교적 비슷한 한적한 작업실에서 매일처럼 만나고 호흡하는 땅, 하늘, 나무, 공기 등 자연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을 일상과 결합한다. 동파이프를 하나둘 썰어서 연결하며 빚어낸 특유의 매스는 일종의 근육질로서 흡사 사람이자 나무를 연상시킨다. 하늘로 솟아오르며 얽히고설킨 이들은 일종의 자연스런 순환구조를 창출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물리적/심리적 연결고리로 작동하며 하늘, 땅, 자연의 기운 등을 총체적으로 환기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정리정돈되어 전시되어 있는 실내 전시공간과는 달리, 작업실 밖에 산재한 작업들은 고구마나 토란 같은 땅작물, 구황식물 등을 오랜 세월에 걸쳐 묵힌 듯한, 오랜 시간 땅 속에서 묵을 대로 묵은 원형질이 땅위로 머리를, 촉수를 드러내고 있다. 이길래는 열매를 캐내듯 이들을 세상 속으로 끄집어 올렸다. 이들은 기억의 총체로서의 덩어리이자, 작가가 풀어보고자 하는 어떤 응어리 혹은 한(恨)같은 것이다.

 

테라코타, 폴리코트, 흙 등을 사용해서 작업을 해서인지 대부분의 작업들은 투박하고 질박한 질감을 보인다. 모두의 공통점은 이들이 유기적인 질서와 울퉁불퉁한 표정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길래의 두툼한 표정과 닮았다. 재료와 제작술이 만나는 작업과정에서 발현되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조율하는 작가의 넉넉함이 스며있음이다. 작업실 도처에서 이들 기운은 꿈틀거리며 솟아나고 있다. 상당시간의 잠복기, 땅속에서의 웅크림, 오랜 시간 머물며 삭힌 기운이 중력을 거스르며 밀고 올라온 것이다.


 

이길래의 작업은 흙과 나무 그리고 삶의 원형으로서의 생명질(生命質)을 숙주로 하여 신화, 역사, 무속을 담아내려는 삶과 역사의 증거로서의 작업이다. 지난 삶은 물론 현실에 기초한 샤머니즘(shamanism)적 메시지를 담아내려는 노력이다. 흙, 균, 세포, 나무 등을 주된 모티프로 꿈틀거리듯 증식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을 돕는다. 자연의 순리와 본성으로서의 생명질을 감퇴시킨 것들을 물리치려는 일종의 벽사(辟邪)개념으로 보인다. 이길래의 작업은 이렇듯 자연의 존재와 기능을 정상적으로 고양시키려는 것이다. 그의 조각은 숭배개념으로서의 기념비가 아니라 장승, 벅수와도 같은 전통적인 민간신앙을 반영하고 있거나 무속, 신화, 관습 등과 연계한 이른바 비불교조각들이다. 일종의 창조적 진화론자와도 같은 태도로 빚어낸 새로운 외계종(外界種)이자 정령(精靈)이 깃든 무속적 생명체다.

 


 

어두워지면 세상이 무서워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와 호롱불 아래에서 책을 보던 가난했던 시골 산골소년에게 소일거리라곤 자투리 종이와 바닥에 그림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어른이 된 지금, 당시 고향에 그려두었던 산, 과일, 나무들을 이런저런 땅위로, 종이위로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자연이 선사한 것은 자연의 위대함을 넘어선 것이었다. 생명을 다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소생하고 겨울지나 봄이 오면 다시 대지위로 솟아나는 이런저런 생명의 기운들을 수없이 목도했다. 그에게 자연은 그 속을 꼼지락거리며 살아내는 미물들이 지닌 생명질과 생명력에 연속이었다. 작가로 살아가기로 맘먹은 초년시절, 그가 주로 만든 것은 꽃이었다. 몸에 배어 있는 유년시절의 기억부터 삼투하기 시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차츰 호박, 사과 등과 같은 과실, 즉 열매들을 불러냈다.

 

비교적 무명의 작가이자 대학 강사시절, 비교적 루틴하고 단조로운 하루 가운데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었다. 차가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만난, 앞선 트럭에 실린 플라스틱파이프 더미들이었다. 유레카. 이길래는 우연하게 눈에 들어온 파이프를 세포단위로 생각하고 이런저런 만남 가운데 나무를 중첩시키기 시작했다. 꽃에서 열매, 나무로 이어진 것이었다. 밑둥, 뿌리, 땅속 열매 등으로 확산되며 자연의 인과과정을 완성해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사비나미술관에서의 개인전(2010)을 두고 소나무전이라고 칭했다. 처음부터 수종(樹種)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싫지도 않았다. 새삼 소나무에 관심을 두고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표피도 만지고 송진도 느꼈다. 그것들은 마치 세포, 원형질 같았다. 본인이 자연의 구성단위, 세포라고 생각한 자연의 본령과도 닮아 보였다. 정령과도 같고 수호신과도 같은 상서롭고 성스러운 것이었다. 줄기도 균형 잡힌 세줄기였으며 군데군데 이끼도 보였다. 이후 이길래는 자연스레 인공과 자연의 조화라는 화두에 천착하게 된다.

 

이길래는 그의 나무작업을 ‘삼지송(三枝松)’이라 명명한다. 세가지는 손가락 같기도 하고 특정할 수 없는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서로를 의지하고 버티고 있는 우리네 삶을 닮았다. 뿌리, 꽃, 열매, 나무, 다시 뿌리 등으로 돌아가고 태어나는 순환 윤회의 바람을 담았다. 현세구복적인 것이다. 차고 넘치는 생명력으로 꿈틀거리며 용트림하고 있는 이길래의 생명질은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일반 인식을 뛰어 넘고 있다. 자연의 충만함과 내재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정교하게 연출하기보다는 용접술이 갖는 우연의 효과를 존중했다. 각각의 덩어리들이 얽히고설키며 연출한 다중의 공간감, 밑둥지, 혹은 나이테와도 같은 이색적인 절단면은 정확한 동심원이 아닌 울퉁불퉁한 타원의 형식으로 끝없는 심리적 므와레(moiré)를 연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못드로잉 작업을 새롭게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못을 심고 먹을 찍어서 하나하나 내리찍듯이 쳐나가는 작업이다. 이것은 ‘천 년’을 테마로 그가 장지에 올리고 있는 대형 ‘못펜’ 작업이다. 작업실에서 만난 이길래는 못펜 드로잉을 300장을 그리겠다고 했다. 150호 정도의 크기에 달하는 장지에 300개의 장생종(長生種)을 마치 피조물처럼 빚어내겠다는 각오다. 성남큐브미술관에서 열린 <불로장생>전(2018)에 선보인 용접조각 ‘천 년’도 같은 맥락이다. 동파이프가 아닌 철을 사용했다. 담뱃불로 그리하듯 용접봉으로 표면을 지졌다.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초기의 작업 내음이 난다. 질박, 투박 그 자체다. 이길래 본연이 보인다. 이길래의 ‘천 년’작업은 뭔가를 각인하는 과정이자 또하나의 지난한 행위와 반복이다. 단순 반복, 순환. 동어반복이 아닌, 인고의 과정을 통해 생명질, 생명률, 내재율, 외재율을 확인하는 추체험 과정이다. 세속적 욕망을 다스리려는 듯 자신을 걷잡으려는 수행과정이 배어 있는 심문(心紋)인 것이다.


 

둥글둥글, 울퉁불퉁한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용접, 드로잉 모두 칼칼하고 뜨겁다. 근육질, 생명질, 정신, 땅의 정신, 흙의 정신, 작업정신, 흙의 기운, 밀고 올라온 뜨거운 기운 모두를 주체할 수 없음이다. ‘천 년’이라는 타이틀 아래 목하 수행하고 있는 드로잉 작업은, 철용접 작업과 제목은 물론, 담아내는 호흡 측면에서 서로 비슷하다. 드로잉이 뾰족한 못으로 장지라는 질기고 제법 두터운 종이를 수없이 격하게 찍어낸다면, 철용접 작업은 용접봉과 토치로 철의 표면을 이른바 ‘지져나가면서’ 하나둘 이어 붙여 나간다. 생겨난 작품의 표면에 마치 뜸을 뜨듯 상처를 낸다.

 

기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증식과 생성 형식의 지난했던 작업으로부터 용접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투박하고 질박하기 그지없는 원시적, 고고학적 형식에로의 이행이라는 매력적 변화가 감지된다. 이른바 소나무라 불리는 미술장식품에 가려진 그의 작업 충동과 성취 동기, 나아가 미래적 호흡을 짐작할 수 있는 변화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기대가 된다. 유레카. ANN >>출처_ 월간 미술, 오페라갤러리

 

이길래_ 작가

박천남_ 미술비평가

 


천년-소나무Millennium Pine Tree-8  82x173(h)x50cm 동 파이프,동선 산소용접 copper welding  2019

 

ABOUT OPERA GALLERY_ 1994년 질 디앙에 의해 설립되었고 그의 진두지휘 아래 현재 전 세계적으로 12개의 갤러리를 가지고 국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오페라 갤러리는 유럽, 미국, 아시아의 모던 & 컨템포러리 미술을 이끄는 대표적인 갤러리 중 하나로, 오페라 갤러리의 컬렉션은 개인 컬렉터들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공공 기관에 대표적인 컬렉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페라 갤러리는 현재 파리, 런던, 제네바, 모나코, 뉴욕, 마이애미, 아스펜, 싱가포르, 홍콩, 서울, 베이루트, 두바이에 자리 잡고 있다.

Founded by Gilles Dyan in 1994 and now internationally established with 12 galleries worldwide, Opera Gallery is one of the leading dealers in modern and contemporary European, American and Asian art, placing works in major private collections as well as leading public institutions. Opera Gallery has galleries in Paris, London, Geneva, Monaco, New York, Miami, Aspen, Singapore, Hong Kong, Seoul, Beirut and Dubai.

안정원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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